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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농경의식(農耕儀式)과 관련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918∼1392)에 고려 태조 왕건(918∼943)때 강릉 사람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의 남효온(1454∼1493)의 추강집(秋江集)에는 영동지역의 사람들은 음력 4월∼5월에 택일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사흘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고 했으며,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문집에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에는 계묘년(癸卯年·1603년) 5월에 잡희(雜戱)를 베풀어 신(神)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강릉의 향토지(鄕土誌)인 임영지(臨瀛誌)에 무당의 굿과 창우(倡優)들에 의하여 놀이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노가면극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근래에 김동하(金東夏), 차형원(車亨元)등의 고증으로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 차형원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릉여고, 강릉교육대학, 관동대학교에서 이어오다가 1985년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전승하게 되었고, 1993년 8월 2일 권영하(權寧夏)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7월 22일 김종군(金鍾群)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강릉단오제에는 제례에 조규돈(曺圭燉), 무격(巫覡)의 빈순애(賓順愛)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 (장자마리 개시)
탈놀이 시작과 함께 제일 먼저 포대자루와 같은 포가면을 전신에 쓴 2명의 장자마리가 연희개시를 한다.
둘째마당 (양반광대·소매각시 사랑)
양반광대와 소매각시는 장자마리가 마당을 정리한 후 양쪽에서 등장한다.
셋째마당 (시시딱딱이 훼방)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호방한 칼춤을 추며 뛰어 나온다.
넷째 마당(소매각시 자살소동)
이를 본 양반광대는 크게 노하여 애태우나 어쩔 수 없이 분통해 하다가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 소매각시를 끌고 온다.
다섯째 마당(양반광대·소매각시 화해)
수염을 목에 감고 자살을 기도하며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소매각시의 의도는 양반광대의 관용과 해학으로 이끌어져 서로 오해가 풀리고 결백함이 증명되므로 놀이는 화해와 공동체의 흥겨운 마당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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